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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군산방송국 부지 '시장터' 아닌 '문화터' 되길

 

군산 유일의 방송국으로 지난 20여년간 군산 시민의 삶과 이야기를 제작하여 송출했던 KBS 군산방송국은 지난 2004년 KBS 전주총국과 통합되면서 군산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현재 군산 KBS는 방송국의 기능을 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군산 KBS 부지에 대형 유통점이 입점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 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군산시 나운동에 위치한 KBS 군산방송국 부지는 대지 3885평에 건평 1353평으로 지난 1980년대 초 뜻있는 지역 인사가 "시민들의 문화공간을 위해 활용해 달라"며 군산시에 매각한 땅이다. 이 땅은 지난 1985년 군산시가 구획정리사업을 하였고, 공영방송인 KBS에 재매각해 KBS 전주총국과 통폐합되기 전까지 20년 가량을 군산시민을 위해 사용해 왔다.

KBS 군산방송국은 구 서해방송을 흡수 통합하여 군산지역뿐 아니라 충청 서남권까지 포괄한 지역의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방송국이었다. 그러나 2004년 5월 감사원 특감에서 KBS의 25개 지역방송국 가운데 강릉 등 16개 방송국의 경우 자체 프로그램 제작비율이 평균 1.1%에 지나지 않는 등의 실적이 부진한데도 불구하고 매년 운영비와 인건비가 증가해 경영에 부담을 준다고 하여 방송국 간 통폐합을 권고했다.

그래서 KBS는 같은 해 7월 기존 9총국 16지역국 39팀을 9총국 9지역국 39팀으로 조정하고, 7개 지역국(군산, 여수, 남원, 공주, 영월, 태백, 속초)을 방송문화센터로 축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문화센터로 겨우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KBS 군산방송국의 부지와 건물은 매각 대상에 오르게 됐고, 국내 굴지의 대형 유통점과 개인 등이 매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역 발전 위한 거대자본 유치... 역효과 우려

KBS 부지가 위치한 나운동은 군산시 인구 3분의 1이 밀집되어 있을 정도로 기형적인 도시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인구밀도가 말해주듯 나운동은 주민들이 지리적으로 접근하기 쉽고,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주로 형성된 곳이다.

하지만 나운동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빈약하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상업적 발상에 따라 대형 유통점이 들어선다면, 이는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시설도 아닐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지역 발전을 위한다'며 유치한 거대자본이 오히려 지역의 상권을 뿌리째 흔들어 주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주민들의 소망에 부합하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본래의 취지에도 맞는 공공문화시설의 입주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군산은 위와 아래로 금강과 만경강을, 좌·우로 드넓은 서해바다와 호남평야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유례없는 도시이다. 또 도시 내부에는 아직도 일제시대의 억압과 착취의 흔적, 70∼80년대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군산시민은 공공 문화시설을 원한다

그 동안 발전의 급물살을 타고 복제된 듯한 건물들이 잔뜩 들어선 여느 도시들과 달리 군산 지역에서 볼품없이 느껴졌던 건물과 거리는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가 되어 군산을 발전시킬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군산이 영상·문화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해 군산을 찾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자연스레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눈에 익숙해지고, 친근한 군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임의로 만든 세트장이 아닌 우리 삶의 배경이 되고 있는 주변 모습들이 그대로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잘 제작된 영화, 드라마 한 편이 지역의 문화·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안군의 격포 주변 일대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으로 이용되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 또 경기도 가평군의 남이섬은 <겨울연가>의 촬영장으로 이용돼서 한류 열풍을 타고 수많은 외국 관광객까지 몰려들고 있다. 이는 군산 곳곳에 문화적인 공간과 시설을 늘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산에서는 올해 중으로 5개관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한 멀티영화관 두 곳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변변한 문화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민회관의 경우 수준 낮은 음향시설 때문에 유치원의 학예회 발표장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며, 그 동안 명맥만 유지해 오던 구시가지의 극장들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새로 개관할 극장들이 그 동안 목말랐던 시민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다지만, 근본적으로 충족시켜 줄만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군산에는 다양한 문화적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시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주민의 접근성이 가장 용이한 KBS 부지에 공공문화시설이 아닌 대형 유통점을 유치한다는 것이 과연 군산의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한 안목 있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빈 공간을 오직 돈벌이에만 사용하겠다는 의사결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터'를 '시장터'로 바꾸는 것은 문화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수준 높은 공연은 피나는 연습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또 수준 높은 공연을 위해서는 같은 수준의 공연 공간도 중요하다. 그런데 혹자는 군산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하고자 해도 관객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공연을 하고자 해도 이를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수준 높은 관객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안목과 이해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학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수준 높은 관객이 없으니 '문화터'를 '시장터'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에 딱 맞는 곳이 바로 KBS 부지이다. 주민의 접근성이 뛰어난 KBS 부지를 문화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어울리고, 다양한 문화를 쉽게 체험하는 지속적인 교육공간으로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군산시민들도 성숙한 문화시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부지는 문화예술 공연공간, 어린이도서관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역적인 특색을 감안하여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시대 유물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역 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지역 내 문화·영상 산업에 비중이 커짐에 따라 종합미디어센터로 활용하는 방안도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군산 시민들은 KBS 군산방송국 부지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부지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형태의 문화시설을 갖추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희망하고 있다.

또 KBS 부지 매각 과정에서 이를 방관하지 않고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 지역단체, 그리고 시민들이 먼저 나서서 공공문화시설을 요구하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문화시민으로서의 요구와 갈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군산시와 KBS 관계자들은 KBS 군산방송국 부지를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계획과 대안을 다양하게 검토하여 시민들에게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시민들도 한번 요구해 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부지를 잘 활용하여 공공의 문화시설이 시민의 것으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2006-05-26 16:23
ⓒ 2007 OhmyNews 박종진 기자



** 작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문화도시 문화복지> 06년 5월호와 오마이뉴스에 실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