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8일 안양자유공원 나들이
올 3월 초 겨울추위가 풀리기 전 군산에서 짐 싸서 안양으로 이사를 왔다.
안양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생활한 곳으로, 학창시절 추억이 있고,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곳이다.
군산은 대학시절(96년 입학)부터, 첫 직장생활을 2003년 시민단체에서 인턴사원부터 시작했다. 인턴생활이 몸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전국 주요기사에서 오르내리는 주요현안(- 새만금, 방폐장)을 몸으로 막아내며 그곳 생활은 시작된다. 그 와중에서도 시민단체 회원가입을 시키려는 계기로 집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결혼 해 신혼살림을 시작했으며, 정부에서 적극 장려하는 다자녀 기준인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자전거로 한 우물만 판지 10여년이 훨씬 넘어선다.
시민단체 동호회를 민간단체, 비영리 법인으로 몸짓을 키웠으며, 자전거하면 빠삭할 정도로 사업, 회원관리, 법인관리를 도맡아 일을 해왔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로 삼으려 했고, 최대 전환기였던 어린이교통공원을 위탁받아 3년 동안 운영 해 오면서 큰 그림도 그려보기도 했다.
몸은 힘들었어도 동시에 많게는 6~10개까지 사업을 구상했고, 동시에 사업들이 진행되면서 톱니바퀴 돌듯이 척척 맞아 떨어져 나름의 보람 같은 것도 느끼곤 했다. 이렇게 꿈은 커졌고, 깊어졌지만, 그 시간도 3년 동안으로 제한되어버렸다.
재위탁 과정에서 온갖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흙투성이를 잔뜩 묻히고, 다른 생계를 찾아야만했다. 이 과정에서 평생 함께할 것 같았던 동료며, 지인들을 외면해야만 했다.
군산에 있는 동안 무척이나 힘들었다. 집사람도 가족모두 힘든 시간들이였던 것 같다.
세 아이가 동시에 아파본 적이 없었는데, 동시에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시련이 닦쳤다.
심지어 사업에 대한 보증이 잘못되어 생활자금으로 2,3금융권에서 조금씩 조금씩 빌려쓴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급기야 신혼집을 팔고 집을 옮겨야 했다. 더욱더 강해져야 했음에도 힘이 들었고, 지쳐만 갔다.
생활자금 등으로 힘들어 이사한 전세집도 덥친 격으로 계약자가 고인이 되면서, 자식들끼리 재산분쟁으로 집을 비워 줘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급히 안양행으로 짐을 싸오게 되었다.
60만 도시 안양은 인근에 서울, 군포, 의왕, 과천 등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올라만 가면 일자리도 많고, 이력서만 넣으면 바로 바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바! 직장구하기 진짜 힘드네..."
군산에서의 경험이 이곳 안양에 올라와보니 아직까지는 그져 별 볼일 없다.
벌써 10~20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단 3곳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한곳은 안양시 관변단체
한곳은 우정사업국을 사칭한 택배회사
또 한곳은 물류센터
지금까지 넣어봤던 회사에서 서류결과를 하나 둘씩 통보해주고 있다.
기대를 해보지만, 면접기회조차 아직 없다.
지금 이시간도 입사이력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고 있는데, 방향을 확 바꿔 작성해야겠다.
채용됨을 희망하면서...
진짜 일하고 싶다....
2013. 4. 23 늦은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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